주인공 같지 않은 주인공


그는 도시에 수 많은 사람들 처럼 알콜중독이 되어 길 모퉁이에 누워 잠들수도 있었지만 그는 행동하기를 원했다. 그는 카메라 앞으로 뛰어 들어와 국가적 강박관념이자 변화를 외치는 것과 함께하는 음식을 구걸했다. 그의 우발적 행동과 그가 음식을 구걸하는 것을 강조한 모습은 Juan Carlos, alias Pánfilo , Dimwitted 의 짧은 비디오로 바뀌어 웹페이지를 장식했다.
나는 다른 영상 매체들이 바이러스처럼 아주 빠르게 우리 사회로 침투되는 심지어 작년 video of Eliécer Ávila versus Ricardo Alarcón 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판필로는 그의 영상이 방송된 후 몇 일 뒤에 그의 투쟁이 고발당했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의 말들은 그의 머리 주위에 있는 빨간색 원과 같았고, 그의 집 문앞에서의 간단한 공지, 그의 삶에 대한 손가락질. 우리를 뒤덮은 극대화된 방송의 힘은 그에게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의 약점을 샅샅히 찾기 시작했다. 아무일 없이 지내는 동안 그는 절도 혐의로 기소되었다. 아마도 암시장에서 럼주를 샀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쿠바인들은 자신들이 매일 살아남거나 도망가기 위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에 대해 분노하였다.
그가 마이크 앞에서 진실했고 그의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그의 존재를 난도질 하는 억압의 칼을 느꼈다.

자신들의 의견표현에 대해서 처벌하는 사회에서는, 바보건 어린아이들이건 그들이 생각하는것을 술주정꾼 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범죄자가 되려고하는 판필로를 찾아서 “범죄자가 될 위험함”이라는 죄목으로 그를 징역 2년형에 처한것에 대해 놀라지 않았다. 재판과정이 그를 찬물 한사발이나 아주 강한 커피보다 더 빠르게 술을 깨게 해주었음에 틀림없다. 재판 전에 이러한 결정에 대한 항소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처벌을 피할수 없을 것인다. 이는 이 처벌이 오직 그사람만 노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그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에게 부족한 모든것을 카메라 앞에 서서 음식! 미래! 자유!라고 외치기 시작할 길거리에 있는 알콜중독자들, 이웃 술주정뱅이들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인가.

우유, 물, 그리고 그림자

사람들이 2007년 7월 26일 라울 카스트로가 한말을 “우유 연설”이라고 명명한 것은 유제품 생산을 증진시키려는 그의 요구 때문이다. 그후 그가 1년 후에 한 연설에서는 산티아고 도시의 물문제만을 해결한다고 약속했다. 모든것이 이번 일요일에 한 그의 연설을 가리키는 듯 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지 못 할것이라 확신한다. 어쩌면 나의 그림자정도를 볼지 모르겠다; 그것이 바로 나이다”

장군은 특별한 발표를 하지 않았고, 전에 그가 올리브 자회사를 미국 행정부에까지 확장시킬수 있다고 언급한 것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미래 계획이나 위기를 끝낼 방법에 대해서 언급조차 하지 않았으며, 6번째 공산당 회의가 언제 열릴지 조차 확실히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몇몇 결정이 이루어지는 정부기관의 다가오는 회의에 대해서만 우리에게 알리는 정도의 역할로 자신을 한정지었다. Holguín 태양은 말할필요도 없이 고대 웅변가에 의해서 관장되는 하얀색과 빨간색 셔츠가 가득찬 장소를 찾았다. 관중들은 열정이 부족했고 텔레비젼을 통해서 나는 축하의 형식에 대해서 가능한한 빨리 끝내고자하는 공유된 욕망을 알아차렸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이벤트에 있었던 수천명의 사람들은 말할거리가 별로 없을것이다 이는 그 자신의 광채를 보지못한 누군가의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번개를 속임수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연설의 “그림자” 인데, 왜냐하면 번개는 당국이 끌어들일수 없는 무언가 이며 군복이 불복종하는 무언가 이기 때문이다. 라울 카스트로가 맞았다: 우리는 더이상 그를 볼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말했던 광채는 이미 오랜시간동안 어떠한 섬광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번역자 주

7월 26일은 1953년 피델 카스트로에 의해서 이끌어진 산티아고시의 몬카다 바락에 대한 대량학살을 기리는 날이다. 이 행사는 반란군의 많은사람들이 죽고 피델과 다른사람들이 감옥에 갖히게 되었던 실패였으며 쿠바 혁명의 “시초”로 여겨진다.

2009년 7월 26일

2009년 7월 2일 다양한 일자리 그리고 월급


당신은 당신의 렌즈를 통해서 본 디저트를 찾고자 당신의 삶을 소비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당신이 그토록 원하던
한 조각을 주었을 때 당신은 당신의 식욕을 잃게 된다. 한 가지 이상의 직장을 가지고자 하는 승낙은 거의 불가능 하기 때문에
우리들 사이에서는 수 년동안 인기있는 요구가 되지 못했다. 허가에 대한 부분은 이것이 점점 발전적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아니면 절망의 한 표현인지에 대한 결정이 어려워서 교착상태에 놓여져 있다.

“Granma” 뉴스에 나온 공식 알림을 통해서, 나는 중학교와 같은 학생신분의 사람들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적지않이 놀라게 되었다. 5년 동안 일을 하지 못하고 월급을 가지 못하면 많은 학생들이 학업을 계속해서 이어 나갈 수 없는데
이는 그들이 대학생이 되어서 옷, 음식, 교통비 등을 지원해 줄 수 있는 가족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이러한 여건이 조성되어야만
나처럼 책상서랍 맨아래에 졸업장을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수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경제적 이유 때문에
법의 테두리를 배회하거나 관두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잘알고 있다.

밤에 일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어도 아직까지 보수가 굉장히 적다는 문제점이 있다. 일자리를 두개 가지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두배로 더 잘살게 된다는 것이나 좀 더 편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제빵사가 밤에 경비원으로 일해서 받는
보수는 이민이나 암시장, 자원배분으로 부터 그의 가족을 충분히 먹여 살릴 수는 없다. 문제는 일자리를 여러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평가 절하된 자국돈을 가지고 무엇을 살 수 있느냐라는 것이다. 낮 시간이 30시간 정도 되어야만 우리가
밤에 하는 일을 통해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살수 있을 것이다.

2009년 6월 17일 주의를 기울이다


이란에서 일어난 일들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것은 쿠바 블로거들에게는 교훈이 되었다. 법정의 독재주의자들은 트위터, 페이스북, 핸드폰들으로 부터
야기된 위험한 결과들에 대해서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매주 열리는 블로거 회의에서 우리는 이란 인터넷사용자들에 대한 비디오를 보았다. 쿠바 공영 방송이 방송하지 않는 시위의 모습들을 대신해서 나는 비디오를 오늘 다시
보았다. 나는 얼굴을 초록색으로 칠한 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고, 7명이 시위중에 죽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듣지도 못했지만 이 비디오를 보면서 모든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모든 세대가 변화를 요구하는 구식 체계에 싫증나는 것을 시각해 보고, 우리를 소 떼처럼 이끄는 지도자들을 일깨우는 것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는 나같은 사람들. 이 모든것들의 중간에 우리의 만족을 위해서 바이트와 스크린이 시위의 형태를 변화시키고 있는가

오늘과 같은 날에는 나는 온라인에 있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크게 낙담하게 된다; 나는 세상의 모든 뉴스를 듣고 싶어 미칠지경이다. 만약 나의 결속력이 이란 블로거들에게
확장될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여기에 그들을 위한 포스트가 있다: “오늘은 당신들이고, 내일은 우리들이 될 수 있다.”

2009년 5월 30일 메신져가 남긴 것들


쿠바 사람들이 MSN 메신저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거의 3년전에 국립 오피스에서 일하는 친구가 나를 몰래 사무실에 들어오게 하여

나는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나는 기사를 쓰고 싶었고 자료를 잃어 버려서 나는 친구에서 몇 분 동안만 그녀의 회사에 있는 낡은 컴퓨터를 쓰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날들이 내가 호텔에서 인터넷을 쓰기위해서 관광객인 척을 했었던 때이고 사용료를 지불할 전환페소를 가지고 있지 않은 주였다.

내 친구는 내게 인터넷 사용동안 금지되어 있는 항목들을 알려주며 MSN이 몇달째 작동되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다. “너는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이메일이나 채팅서비스는

이용할 수 없어” 그리고 눈을 크게 뜨며 “El Nuevo Herald에 갈 생각은 꿈도 꾸지마”

내가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와 연관된 채팅에 대한 제한을 물어보았을 때 내 친구는 내가 네트워크 관리자가 통제하지 못하는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면 안된다고 설명해

주었다. 핫메일은 모든 직원의 응답 기록을 유지하는 기록 소프트웨가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금지 되었고 조금 더 후에는 야후와 지메일이 직장과 교육적연결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로 금지되었다.

이제 제한은 다른 쪽에서 온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정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게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단 사람들로부터 온다. “윈도우 메신져 IM은 여러나라에서

미국의 제한에 의해서 사용되지 못하게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차단에 대한 공고를 내었다. 나는 한번더 우리 시민들이 지고 있다고 느꼈는데 이는 정부가 세계 다른

나라들과 소통할수 있는 고유의 채널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명백하게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시련이며,거의 쿠바에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모든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우리는 웹페이지의 불법자들이다. 분명히 말하면 내친구가 일하는 회사에서 연결을 감시하는 감시자들은 기쁠수 밖에 없다.: 마이크로 소프트가 그들을 위해서 이미 조치를 취했으니까.

일 바깥 세상에게 2009년 4월 21

미국 정상 회담이 어제 끝났다. 오바마에 의한 제안들을 토론하기 위한 국회의 긴급회의나 중앙위원회당의 특별 다수 입법회의를 개최하지는 못했다.
“쿠바와의 새로운 시작”, 미국 대통령은 트리니다드와 토바고에서 말했지만 오늘 피델 카스트로의 반응은 오직 데니엘 오르테가의 긴 연설에 관해서만 반응을 보였다
내셔널 뉴스의 저널리스트들은 거리로 나가 사람들의 반응을 취재하지 않았고 내 이웃은 북미로부터의 침입에 대비하여 operation caguarian에 등록되었다.

지금 일어난 일에 대한 중요성을 고려해 볼때 내 건물에서 오늘 열리는 “책임 회의”는 미국과 쿠바사이의 새로운 관계정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것이다.
하지만 대표단은 논의의 끝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묻기 보다는 쓰레기통 밖으로 그들의 쓰레기를 던지는 제멋대로인 이웃들에 대해서 더 이야기 하고 싶어한다.
내 아들의 학교에서는 몇몇 선생님들은 “오바마는 검은색을 칠한 부시에 불과하다”고 계속해서 말하고, 거리의 게시판에는 아직도 제국주의에 대한 끝없는 투쟁을
요구하는 글이 있다. 바깥세상에 말해진것과 우리가 매일 듣는 지루한 연설중의 차이점에 대해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심지어 라울 카스트로 그 자신도 우리와 절대로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오바마와 이야기할 것 같이 보인다.
나는 내스스로에게 물어보지 않을수 없다. 만약 이 모든 “올리브나뭇가지”와 더 큰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적극성이 단지 바깥세상에 이야기되어진
말뿐인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귀로부터 멀리 이야기 되어진 문장들이라면.

근시 난시 2009 년 3월 23일

나는 낙천주의의 안경을 쓰고 내가 사는 도시가 무너지는 것을 흘겨 보았다. 이 희미하게 빛나는 희망의 크리스탈과 함께
공중에서 공중제비도 하지 않은 채, 나의 심장은 더욱 평화적으로 뛴다.
그들 덕분에, 지난 5개월 동안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없는 무능한 국가 덕분에, 나는 14층을 올라가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만
나는 열정적인 생태학자라서 오직 인간 연료만을 소비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모든 것을 보는 이 새로운 안경과 함께 나는 시장에서 너무 비싸 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동물들을 사랑하고
살육의 고통을 피하려하기 때문에 고기가 없는 접시를 보았다.

집에는 인터넷이 되지 않지만 장미빛 렌즈는 내게 이 서비스는 오직 공무원과 외국거주인을 위한 것이라 알려준다.
아마도 그들은 나를 인터넷의 “남용”으로 부터 보호하고 싶어했다고 볼테르의 괴상한 캉디드 소설처럼 나는 내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래서 나는 아주 짧은 순간을 위하여 폐허 대신에 왕국을 보고, 우리를 승리로 이끄는 지도자들 실제로는
그들은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으며, 나의 머리카락에 홀린 남자들 그들이 계속해서 나를 쳐다 볼 것이라는 것을 알지라도
문제는 내가 무구함의 안경을 벗었을 때 시작되며 위기의 진정한 색채가 나타날 때 내 주위를 살펴본다.
내 종아리의 고통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시간의 비행에 반응하여 되돌아 온다. 나는 스테이크를 꿈꾼다.
그리고 깜빡이는 모뎀이 거의 성적인 욕망이 되어 버렸다.
나는 낙천주의의 안경을 베란다로 보냈다. 어쩌면 그곳에는 안경을 이용하고 싶은 안경과 함께 진실을
왜곡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